• 꽃가마 TALK
  • 게시판
  • 꽃가마 출동요청

게시판 > 전체보기

서정민갑 칼럼 아는 사람의 아는 얘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생각해볼 몇 가지 이야기


 

 

(출처 - 20thcenturyfox / 76th Golden Globe AWARDS)


  

1월 7일(현지시각 6일)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프레디 머큐리 역 라미 말렉) 2관왕의 영예를 안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해, 서정민갑님께서 기고해주신 글입니다. - 편집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생각해볼 몇 가지 이야기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2019년 1월 4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누적 관객 수는 94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해 연말 영화산업 전문가 성하훈 기자는 스크린 수 636개에 1410회 상영 중이라 2018년 마지막 주말 900만명 돌파가 확실하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2018년 12월 30일 아침 뉴스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 900만 돌파 소식을 보도했다. 10월 31일에 개봉한 이 영화가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끌 거라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한국에서 개봉한 음악 영화 중 가장 흥행한 2014년의 <비긴 어게인>은 343만명 관객을 동원했다. 그보다 호평을 얻은 <원스>의 관객 수는 27만명에 불과했다. 장안의 화제였던 <위플래쉬>도 158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데서 그쳤다. 훗날 일을 미리 장담할 순 없지만 <보헤미안 랩소디>가 세운 국내 개봉 음악영화 흥행기록은 좀처럼 깨지기 어려울 듯 하다.





이 영화가 왜 이렇게 히트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전문가, 비전문가들이 앞 다투어 이야기했다. 분명 겹칠 이야기를 되풀이하자면 우선 퀸의 노래가 가진 매력과 익숙함을 부정할 수 없다. 1973년 정규 1집을 내며 등장한 퀸은 그동안 <Bohemian Rhapsody>, <We Are the Champions>, <We Will Rock You>,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비롯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퀸은 1991년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 이후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퀸의 노래는 지금도 계속 들을 수 있다. 여전히 대형 국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면 항상 <We Are the Champions>와 <We Will Rock You>가 울려 퍼진다. 다른 곡들도 광고 음악 등에 꾸준히 사용하면서 잊혀지거나 낯설지 않은 노래로 살아남았다. 퀸과 함께 성장한 1970~80년대 세대가 아니어도 퀸 노래 한 두 곡 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리고 퀸은 록 밴드로 활동했지만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중심으로 만든 록킹한 사운드를 구현하는데 몰두하지 않았다. 퀸의 음악은 항상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 노래는 매력적인 멜로디와 매끄러운 기승전결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팝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실제로 퀸은 뉴웨이브, 디스코, 컨템포러리 팝을 비롯한 팝의 방법론을 외면하지 않았다. 록 마니아들은 더 록킹한 음악을 들려준 크림(Cream)이나 레드 제플린(Led Zepplin) 같은 밴드를 훨씬 높게 평가하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듣기에는 퀸의 노래가 훨씬 친근하고 감동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보컬의 선명한 고음과 능수능란한 테크닉을 편애하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경쾌함과 달콤함, 폭발력을 두루 갖춘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들은 매력만점이었다. 그래서 록 음악 역사상 퀸보다 한국 대중 친화적인 해외 록 밴드를 찾기는 쉽지 않다. 혹자는 레드 제플린 같은 밴드를 영화화해도 이렇게 히트할 수 있을 거라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혹시라도 또 다른 록 밴드를 영화화한다면 국내 관객들에게 먹힐 수 있는 뮤지션은 신해철 정도뿐이다.


신해철은 주로 프로그레시브한 록 음악을 구사했지만 그 또한 팝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해철도 프레디 머큐리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갔다. 그렇다. <보헤미안 랩소리>가 히트한 또 다른 이유는 이미 퀸의 노래가 익숙했고, 퀸의 노래가 대중적이며 강력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프레디 머큐리를 비롯한 멤버들의 성장과 성공 드라마로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돌연 밴드의 일원이 되고, 서서히 인기를 끌고, 음반사와 갈등을 빚고, 빅스타가 되고, 양성애자로 살고, 멤버들과 갈등하다 화합해 감동적인 공연을 펼치는 줄거리는 팝스타와 영화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비밀과 오해를 가진 천부적인 재능의 자유인이라는 뮤지션에 대한 신화와 명확한 갈등해소 구조에서 비켜서지 않는 영화는 퀸에 대한 고정관념 너머를 파고들지 않는다. 그 덕분에 전혀 어렵지 않고 낯설지 않으며 익숙하다. 어떤 이들은 프레드 머큐리가 게이인 줄 몰랐다며 놀라고 불편해하지만 영화 속의 어떤 갈등도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퀸의 음악적 본질이나 프레디 머큐리의 사유를 파고들지 않는 영화는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냥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미 퀸을 알고 있는 세대에게 이 영화는 오래도록 좋아했던 노래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추억의 시간을 제공한다. 반면 한 두 곡의 노래 말고는 퀸을 몰랐던 세대에게 이 영화는 새롭다. 1990년대 이후 세대는 록에 익숙하지 않고, 이들에게 1970년대는 한국전쟁만큼 멀다. 이들에게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모두 미지의 영역이다. 그 윗세대들은 이미 겪고 알고 그리운 시간들이 이제 뒷세대에게는 모르는 시간이 되었다. 모르는 시간에는 추억이 없고 향수가 없다. 그래서 새롭고 신기하며 때로 놀랍다. 1990년대 이후 세대들이 예전 음악을 들으며 그 때 이런 음악을 만들다니,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아는 체 하는 일은 재미가 없다. 자신이 몰랐고 다른 이들도 몰랐던 경험을 할 때 비로소 재미가 생기고 차이가 생긴다. 그렇게 새로움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1970년대와 80년대는 새롭게 발견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세대에게 단절된 시간이었던 1970~80년대의 시간과 문화는 어느새 새롭고 힙한 문화로 재탄생하는 중이다.





수년째 계속 열리는 레코드페어에 올해에는 3만여명의 음악팬들이 몰렸는데, 그 중에는 바이닐 음반을 경험해 본 적 없는 20대~30대가 적지 않다. 이들이 바이닐 음반을 구입하는 이유는 과거의 음악을 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바이닐 음반을 구입하고 재생하는 체험 자체가 새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시티팝으로 통칭하는 1980년대 전후의 팝 음악에 젊은 세대 일부가 관심을 보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몰라서 알지 못했던 과거의 음악들 가운데 현재의 팝과 다르지 않은 매끈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만날 때, 옛 음악은 친숙할 뿐 아니라 새롭고 매력적인 체험대상으로 재탄생한다. 누구나 알고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좇아가는 쪽보다는 이쪽이 훨씬 흥미롭고 자신도 돋보인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소비하는 대상은 알지 못했고 쉽게 하지 못하는 체험이다. 서울특별시 을지로와 익선동에 사람들이 몰리고, 부산광역시의 옛 달동네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시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1차 경험과 그 경험을 자랑하고 공유할 수 있는 2차 경험을 위해 사람들은 시간과 돈을 쓴다. 이제 자본주의 사회는 물건만 팔지 않는다. 물건보다 체험을 판다. 체험을 컨텐츠로 만들어 소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판다. 1970년대 세대들에게 통기타 가수들이 미사리 라이브 카페로 귀환하고, 1980~90년대 세대들에게 당시 히트곡이 뮤지컬과 밤과음악사이로 귀환했으며, 1990년대 세대들에게 에이치오티와 젝스키스가 재결성공연으로 귀환할 때 그 경험은 그 세대 밖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어떤 음악과 경험은 그 세대 밖 세대들에게 단절된 새로움으로 귀환해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누가 더 과거로부터 새롭고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서정민갑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대중음악웹진 가슴 편집인과 대중음악웹진 보다의 기획위원을 맡았고, <Red Siren> 콘서트,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등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연출도 병행하고 있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를 비롯한 몇 권의 공저가 있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이메일은 bandobyul@hanmail.net 




사진 53*53 내용입력
 

댓글 0

목록

아이디로 로그인

로그인

꽃가마에 처음이세요?

꽃가마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