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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칼럼 아는 사람의 아는 얘기; 우리에게는 여전히 크라잉넛이 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크라잉넛이 있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며칠 전 홍대 앞, 정확하게 말하면 합정역 근처를 걷던 부인님이 새로운 가게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자리에 뭐가 있었냐고.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부인님이 말했다. 홍대는 뭐가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고. 맞다. 홍대 앞에서는 5년을 넘긴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오래 되거나 새로운 가게들이 마구잡이로 사라지는 홍대 앞 풍경에 질려버렸다. 우리는 홍대 앞의 기억과 추억을 대부분 잊고 잃어버렸다. 사실 홍대 앞뿐만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오래된 풍경이 좋아진다. 근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트렌드도 좋고 힙도 좋지만 나이 드니 트렌드와 힙을 쫓아다니기는 힘이 든다. 트렌디 하고 힙한 스타일은 대개 젊은 세대의 취향이라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취향과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음악, 힙한 음악도 좋지만 세상의 모든 뮤지션이 다 새롭거나 힙한 음악을 하지는 못한다. 사실 나부터 새롭지 않고 힙하지 않다. 1990년대 발라더가 2010년대라고 신스팝을 하지는 못하고, 2000년대 펑크 뮤지션이 네오 소울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옛날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인기를 잃고 활동을 중단한 뮤지션들이 한 둘 아니다.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은 얇고 얇아 오래 음악을 하기 어렵다. 유행하는 음악을 하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고, 옛날 음악이 좋다는 이들도 옛 음악인의 새로운 노래는 외면한다. 그러다보니 30년, 40년 동안 계속 음악을 하면서 함께 늙어가는 이들이 드물다. 그래서 이제는 오래 음악을 하는 이들이 무조건 반갑다. 그들의 음악이 더 깊어지거나 항상 새로우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옛날 노래만 불러도 좋고, 새로운 음반을 내놓으면 그저 고맙다.



사진출처 - 드럭레코드


펑크 밴드 크라잉넛도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크라잉넛은 <말달리자>나 <밤이 깊었네>의 크라잉넛이다. 1993년부터 시작해, 1995년 홍대 앞 클럽 드럭에서 활동하면서 1996년 컴필레이션 음반 [Our Nation] 1집으로 공식 데뷔한 크라잉넛은 음반의 제목처럼 인디라는 ‘우리의 나라’를 만든 주역이다. 델리 스파이스의 <차우차우>와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빼놓고 한국의 인디 음악을 말할 수 있을까. 홍대 앞, 라이브 클럽, 펑크, 밴드, 인디라는 키워드를 대표하면서 인디의 이미지를 만들고, 친근하게 만든 크라잉넛이 없었다면 인디는 더 빨리 친근해지고 더 격하게 신나지지 못했을지 모른다. 개구쟁이 같고, 천둥벌거숭이 같은 크라잉넛은 평생 나이 들지 않는 친구처럼 곁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대부분 1976~1977년 생인 크라잉넛의 멤버들도 어느새 40대가 되었고, 누군가는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듯 홍대 앞의 풍경도 달라졌다. 적지 않은 라이브 클럽과 카페가 문을 닫았고, 그 옛날 록 키드/펑크 키드들은 더 이상 라이브 클럽을 찾지 않는다. 인디 신에서 록의 지분도 많이 줄었고, 유행하는 음악도 바뀌었다. 록 페스티벌의 인기는 일렉트로닉 페스티벌로 넘어갔다. 이제는 각종 행사에서 록 밴드보다 힙합 뮤지션을 찾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들은 음반을 사지 않고 음원을 듣는다. 음악의 완성도만큼 뮤직비디오와 짤방, 소셜미디어가 더 중요해진 시대, 뮤지션은 신경 쓰고 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



사진출처 - 드럭레코드


다행히 크라잉넛은 활동을 멈추거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경록의 생일 경록절은 홍대의 명절이 되었고, 홍대 앞에서 크라잉넛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음악계 안팎의 이슈가 있을 때면 크라잉넛의 목소리와 공연을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래도록 같은 일을 해온 이들은 안다. 평생 같은 일을 하면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뮤지션으로 사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아무리 <말달리자> 같은 빅히트곡이 있다고 해도 몇 곡의 히트곡이 평생 생계를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특히 밴드 음악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고 좋은 곡을 계속 써내려면 더더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크라잉넛은 다시 5년만에 새 음반을 내놓았다. 10월 12일 발표한 정규 8집 [리모델링]이다. 12곡의 노래를 담은 이번 음반에서 크라잉넛은 여전히 펑크 록 사운드를 구사하는데 이전 음반들과 마찬가지로 펑크에만 자신들을 묶어두지 않는다.



크라잉넛 리모델링 앨범자켓 출처 - 드럭레코드


크라잉넛은 이제 그동안 자신들을 스쳐 지나간 시간을 응시하면서 “시간은 흐르고 / 기억은 희미해져도 / 너와 듣던 노래 / 같이 걷던 모래 언덕”을 떠올리는 모습과 “술 마시고 속 쓰리고 후회하고 괴로워도 / 또 마시고 오줌 싸고 욕 처먹”는 모습, “토요일밤 / 정신줄 완전 내려놓고 오늘 하루는 놀고 싶어”하는 모습을 한 장의 음반에 함께 담는다. 누구나 서로 다른 모습이 있듯 크라잉넛도 그렇다. “이 밤을 위해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외치는 여전히 열정 넘치는 크라잉넛이 있고, 스쳐온 시간의 무게를 감당하는 크라잉넛이 있다. 고집과 결기 같은 펑크의 애티튜드를 잃지 않는 크라잉넛과 후회와 그리움에 대해 말하는 크라잉넛을 만나며 우리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고, 변하는 자신과 변하지 않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돌직구 같은 솔직함과 따스한 시선이 매력적인 초반부의 곡들을 지나면 <잘생겨서 죄송합니다>, <심장의 노래>, <이방인>처럼 재기발랄한 노래를 만날 수 있다. 크라잉넛이 품고 있는 에너지와 음악적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잘생겨서 죄송합니다>는 동유럽의 집시 음악 같은 왁자지껄한 요란함이 매력이다. <심장의 노래>는 비장한 정서에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연주와 선명한 멜로디로 몰아친다. 크라잉넛의 현재, 이들의 역량과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근사한 곡들이다. 크라잉넛이 바라 본 세상을 가감없이 담아낸 <이방인> 역시 크라잉넛이 우리 시대의 예술가로서 두 눈을 감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곡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미세먼지 

사람 잡을 듯한 경적 소리

돈이 없으면 강제 철거

우린 낯선 도시의 이방인


개미들은 맨날 열심히 일을 하고

맨날 피박에 쓰리고 속 쓰리고

작은 풀잎들은 물대포에 쓰러지고

우린 낯선 도시의 이방인

Make my way 다 거리로 나와


나 오늘 TV를 봤어

제길, Rhyme 저걸 어째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말을 달려

제길, Rhyme 저걸 어째

문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와

작은 촛불로 이 어둠을 태워

눈치 보지 말고 소리를 질러보자

제길, Rhyme 저걸 어째


기타를 튕기며 타고 넘는 flow boy

낯선 도시의 이방인

기타를 튕기며 타고 넘는 flow boy

낯선 도시의 이방인

Make my day 자, 할 테면 해봐


21년 동안 노래를 불러왔지

작은 클럽에서 우린 행복했어

허나 클럽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우린 낯선 도시의 이방인


하지만 절대로 기타를 놓지 않아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기타 쳐

밤이 새도록 계란으로 바위 쳐

우리 모두 함께 신나게 박수 쳐

Make my way 다 거리로 나와


밤새 춤을 추고 노래하자

어느새 청춘이 간다 해도 

우린 모두 함께 지금을 즐겨보자

우린 맞선 도시의 이방인


모진 비바람에 당당하게 피어있는

저기 불꽃처럼 파랗게 노래하자

모진 세월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린 자유로운 이방인


세월은 흘러가고 돌이켜 본다면

지나온 나의 발자국들 후회하고 싶진 않아


기타를 튕기며 타고 넘는 flow boy

낯선 도시의 이방인

Make my way 다 거리로 나와


기타를 튕기며 타고 넘는 flow boy

낯선 도시의 이방인

Make my day 자, 할 테면 해봐


기타를 튕기며 타고 넘는 flow boy

낯선 도시의 이방인

Make my way 다 거리로 나와

  

기타를 튕기며 타고 넘는 flow boy

맞선 도시의 이방인


<이방인> 작사/작곡 한경록, 편곡 크라잉넛



그리고 웃픈 상황을 연결한 <똥이 밀려와>의 빼어난 멜로디와 그리움 가득한 <망상>의 록킹하면서도 서정적인 서사, 담백하고 힘 있는 <우리들은 걷는다>는 메시지와 음악 어느 쪽으로도 손색 없는 크라잉넛을 보여준다. 청소년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가는 동안 여전히 곁에 있는 크라잉넛, 여전하면서도 다른 시간을 노래하는 크라잉넛, 지금은 지금의 멋진 노래를 내놓는 크라잉넛. 우리에게는 오늘도 크라잉넛이 있다. 앞으로도 한결 같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정민갑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대중음악웹진 가슴 편집인과 대중음악웹진 보다의 기획위원을 맡았고, <Red Siren> 콘서트, <권해효와 몽당연필> 콘서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등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연출도 병행하고 있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를 비롯한 몇 권의 공저가 있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이메일은 bandobyul@hanmail.net 




사진 53*53 내용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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